테이블 위의 고양이 - ![]() 신경진 지음/문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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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가장 강한 이미지를 줬던건 역시 제목과 표지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고양이였다. 시각적 이미지가
첫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이기도 하고, 또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인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고양이' 라는건 메타포로써 작용하는 것이지 실제로 이 책에 고양이가 등장하진 않는다. 이는 극히 상징적 의미이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다. 주인공 '제이슨' 을 고양이로 비유하는, 그것도 조금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테이블 위에서
애매한 포즈로 앉아있는 고양이에 비유하는 것이리라 예상만 할 수 있을 뿐.
제이슨은 도박사, 즉 겜블러이다. 그는 인생을 마치 게임을 즐기듯 살아온 사람이다. 게임이라 하여 가볍게, 즉흥적이고 신중치 못한 인생이라 치부해버리는건 그에게 있어 '게임' 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게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도박이나 유희 활동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순간의 흥분과 희열을 절제하며 치밀하게 계산된 안면근육의 움직임과 손끝의 감촉, 잠깐동안의 시선조차 조심해야 하는 긴장된 분위기를 무기삼아 확률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승리를 쫓는 야수와도 같은 사람이다. 딱히 계획이나 설계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면서도, 그래서 때로는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다가도 순간적으로 가진 돈을 다 잃고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는 굴곡이 심한 삶을 살면서도 크게 좌절이나 상심을 하지 않는 무신경한 인간일 수 있는 것이 그가 인생을 하나의 게임, 도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그에겐 인맥이나 친구라는 말도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여자란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섹스파트너 정도의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친구란 그저 함께 돈을 따거나 잃을, 혹은 자신에게 돈을 채워줄 호구 정도의 의미이다. 그는 혼자임을 자처하며 테이블 위에 홀로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독한 시선을 유지한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한 배경, 인물의 설명으로 초반을 채우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올리며 본격적인 도입에 들어간다. 제이슨의 무기력한 삶에 자그마한 자갈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과거 친구였던 존재의 죽음. 왠지 모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사람으로 기억되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고 강한 인상을 남긴 친구 강지수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조사를 받고 난 후의 제이슨은 무기력하게 솔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듯 살아오던 스스로의 삶에서 조금씩 탈피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좇을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드디어 사냥감을 발견해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제이슨이 그의 죽은 친구 강지수를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캐나다 국적이긴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순수 한국인으로써 제이슨은 친구를 추적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과, 강지수를 자신들의 직원이라 말하며 그의 죽음 직전에 가장 가깝게 알고 지내던 제이슨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 떨어짐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남한 정부와 함께 대북공작의 주축이 되어 강지수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세력에 깊숙히 침투하여 그의 죽음과 숨겨진 진실들을 추적한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스릴러물의 공식을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의 탐구,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분석하는 화자의 독백과 사소한 것도 사소하지 않게 다가오는 긴장감의 연속. 속임과 속임수의 향연이 한 곡의 샹송처럼 달콤하게 휘감겨 들어온다. 그 어느것도 위화감 없이 하나 하나 맞아 떨어져간다. 북한의 인물들은 우리가 북한에 가지고 있는 괴뢰군의 느낌처럼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는 한민족' 이라며 무작정 친밀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들은 엄연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 다소 많은 차이를 가진 사상교육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 사고방식도 생각 외로 큰 차이를 두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도박과 술,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이슨과 그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들은 소설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고 또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고 오묘한 긴장감 속에서 독자를 흡입하는 장치로써 발휘되고 있었다.
북한과 남한의 대립, 공작과 공작으로 자칫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던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나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던건 국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고독한 인물 '제이슨' 의 시선으로 이야기, 사건들을 철저히 포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겐 남북간의 긴장관계 따위는 큰 의미가 없으며 현 국적인 캐나다에 대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남한, 북한, 미국, 마카오는 그저 소설의 배경이며 대립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아이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민감한 소재를 의도에 따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건 소설이 다소 무거운 소재를 사용함에도 이를 '소재' 의 선에서 완벽히 제한할 수 있는 절제된 문장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신경진, 오랜만에 찾아낸 훌륭한 소설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테이블 위의 고양이 를 읽고 나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해 즐거웠다 라는 감상과 함께 신경진 이라는 좋은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라는 희열이 동시에 다가온다. 아는 작가, 혹은 선호하는 장르에 따라 책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이따금씩 전혀 내 취향에 연관성이 없는 책들을 충동적으로 접하는 것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제이슨은 도박사, 즉 겜블러이다. 그는 인생을 마치 게임을 즐기듯 살아온 사람이다. 게임이라 하여 가볍게, 즉흥적이고 신중치 못한 인생이라 치부해버리는건 그에게 있어 '게임' 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게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도박이나 유희 활동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순간의 흥분과 희열을 절제하며 치밀하게 계산된 안면근육의 움직임과 손끝의 감촉, 잠깐동안의 시선조차 조심해야 하는 긴장된 분위기를 무기삼아 확률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승리를 쫓는 야수와도 같은 사람이다. 딱히 계획이나 설계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면서도, 그래서 때로는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다가도 순간적으로 가진 돈을 다 잃고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는 굴곡이 심한 삶을 살면서도 크게 좌절이나 상심을 하지 않는 무신경한 인간일 수 있는 것이 그가 인생을 하나의 게임, 도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그에겐 인맥이나 친구라는 말도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여자란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섹스파트너 정도의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친구란 그저 함께 돈을 따거나 잃을, 혹은 자신에게 돈을 채워줄 호구 정도의 의미이다. 그는 혼자임을 자처하며 테이블 위에 홀로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독한 시선을 유지한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한 배경, 인물의 설명으로 초반을 채우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올리며 본격적인 도입에 들어간다. 제이슨의 무기력한 삶에 자그마한 자갈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과거 친구였던 존재의 죽음. 왠지 모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사람으로 기억되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고 강한 인상을 남긴 친구 강지수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조사를 받고 난 후의 제이슨은 무기력하게 솔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듯 살아오던 스스로의 삶에서 조금씩 탈피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좇을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드디어 사냥감을 발견해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제이슨이 그의 죽은 친구 강지수를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캐나다 국적이긴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순수 한국인으로써 제이슨은 친구를 추적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과, 강지수를 자신들의 직원이라 말하며 그의 죽음 직전에 가장 가깝게 알고 지내던 제이슨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 떨어짐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남한 정부와 함께 대북공작의 주축이 되어 강지수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세력에 깊숙히 침투하여 그의 죽음과 숨겨진 진실들을 추적한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스릴러물의 공식을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의 탐구,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분석하는 화자의 독백과 사소한 것도 사소하지 않게 다가오는 긴장감의 연속. 속임과 속임수의 향연이 한 곡의 샹송처럼 달콤하게 휘감겨 들어온다. 그 어느것도 위화감 없이 하나 하나 맞아 떨어져간다. 북한의 인물들은 우리가 북한에 가지고 있는 괴뢰군의 느낌처럼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는 한민족' 이라며 무작정 친밀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들은 엄연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 다소 많은 차이를 가진 사상교육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 사고방식도 생각 외로 큰 차이를 두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도박과 술,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이슨과 그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들은 소설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고 또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고 오묘한 긴장감 속에서 독자를 흡입하는 장치로써 발휘되고 있었다.
북한과 남한의 대립, 공작과 공작으로 자칫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던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나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던건 국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고독한 인물 '제이슨' 의 시선으로 이야기, 사건들을 철저히 포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겐 남북간의 긴장관계 따위는 큰 의미가 없으며 현 국적인 캐나다에 대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남한, 북한, 미국, 마카오는 그저 소설의 배경이며 대립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아이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민감한 소재를 의도에 따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건 소설이 다소 무거운 소재를 사용함에도 이를 '소재' 의 선에서 완벽히 제한할 수 있는 절제된 문장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신경진, 오랜만에 찾아낸 훌륭한 소설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테이블 위의 고양이 를 읽고 나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해 즐거웠다 라는 감상과 함께 신경진 이라는 좋은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라는 희열이 동시에 다가온다. 아는 작가, 혹은 선호하는 장르에 따라 책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이따금씩 전혀 내 취향에 연관성이 없는 책들을 충동적으로 접하는 것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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