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서평2010/01/06 19:44
엄마를 부탁해 - 8점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반성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들은 '진부하다' 라는 표현을 들먹거릴 만큼 흔하디 흔한 줄거리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엄마를 부탁해> 역시 이러한 염증이 느껴지는 제목에 더불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략적인 줄거리 예상이 그리 달콤하지는 않았다. 재미없으면 끝까지 읽지 않는 일도 가끔은 있어서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이 없긴 했지만, 두 손으로 겉장을 잡고 펼쳤다. 추천을 받은 책이었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세 자식과 그녀의 남편이 엄마를 찾아다니면서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들, 고통스러운 후회와 반성을 되풀이하는 이야기. 큰아들, 둘째딸, 막내딸, 아버지. 우리는 이들 중 누구의 회한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이다.
  세밀한 표현들이 현장감있게 묘사되어 있다. 아련한 풍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감어린 단어들이 나열되고, 문장으로 그림을 그려 고향집을 머릿속에 펼쳐놓는다. 우리의 어머니는 그 곳에서 자식들 먹일 쌀을 퍼다 밥을 짓고 나물을 무치고 밭을 일군다. 한 여인의 인생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그녀의 인생은 '엄마' 로 수렴되는 희생적인 삶이었다.

  우리는 <엄마를 부탁해> 를 읽으며 어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움에 휩싸이게 된다. 회한이 온 몸을 감싼다. 이는 책 말미에 등장하는 단어에 일맥상통하는 듯 보인다. 고해성사.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저지른 불효에 몸서리치며 책을 덮고 어머니를 찾는다. <엄마를 부탁해> 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따뜻했던 존재, 어머니의 실종을 겪고 그재서야 자신들의 과오를 봇물 터지듯 목 밖으로 토해내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서울역에서 잃어버린게 아니었다. 등뒤를 감싸 안아주고 있는 존재를 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장성한 자식들과 무심한 부군에 의해 어머니는 스스로를 잃고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밑바닥을 볼 틈도 없이 헌신적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잊는 병을 얻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엄마를 부탁해> 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게 만드는 책이다. 나도 몇 번을 울고불고 했지만 내가 유달리 감성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 신경숙 님이 존경스럽다. 진정 가슴을 울리는 글은 손 끝을 놀려 쓰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가슴을 찢어 조각내어 책 장 한 쪽 한 쪽에 흩뿌려 이 책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뒤돌아 어미를 찾으며 눈물짓게 해준 신경숙 작가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도 분명 존재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아무리 애틋하고 가슴아프고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라 할 지라도 소재가 진부했음은 분명하다. 이야기가 절정이라 할 부분이 딱히 없어 지루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폭이 크지 않아 무리 없이 완독이 가능했다. 이 책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참 슬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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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서평2009/11/07 17:10
테이블 위의 고양이테이블 위의 고양이 - 10점
신경진 지음/문이당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가장 강한 이미지를 줬던건 역시 제목과 표지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고양이였다. 시각적 이미지가 첫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이기도 하고, 또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인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고양이' 라는건 메타포로써 작용하는 것이지 실제로 이 책에 고양이가 등장하진 않는다. 이는 극히 상징적 의미이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다. 주인공 '제이슨' 을 고양이로 비유하는, 그것도 조금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테이블 위에서 애매한 포즈로 앉아있는 고양이에 비유하는 것이리라 예상만 할 수 있을 뿐.

  제이슨은 도박사, 즉 겜블러이다. 그는 인생을 마치 게임을 즐기듯 살아온 사람이다. 게임이라 하여 가볍게, 즉흥적이고 신중치 못한 인생이라 치부해버리는건 그에게 있어 '게임' 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게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도박이나 유희 활동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순간의 흥분과 희열을 절제하며 치밀하게 계산된 안면근육의 움직임과 손끝의 감촉, 잠깐동안의 시선조차 조심해야 하는 긴장된 분위기를 무기삼아 확률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승리를 쫓는 야수와도 같은 사람이다. 딱히 계획이나 설계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면서도, 그래서 때로는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다가도 순간적으로 가진 돈을 다 잃고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는 굴곡이 심한 삶을 살면서도 크게 좌절이나 상심을 하지 않는 무신경한 인간일 수 있는 것이 그가 인생을 하나의 게임, 도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그에겐 인맥이나 친구라는 말도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여자란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섹스파트너 정도의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친구란 그저 함께 돈을 따거나 잃을, 혹은 자신에게 돈을 채워줄 호구 정도의 의미이다. 그는 혼자임을 자처하며 테이블 위에 홀로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독한 시선을 유지한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한 배경, 인물의 설명으로 초반을 채우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올리며 본격적인 도입에 들어간다. 제이슨의 무기력한 삶에 자그마한 자갈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과거 친구였던 존재의 죽음. 왠지 모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사람으로 기억되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고 강한 인상을 남긴 친구 강지수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조사를 받고 난 후의 제이슨은 무기력하게 솔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듯 살아오던 스스로의 삶에서 조금씩 탈피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좇을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드디어 사냥감을 발견해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제이슨이 그의 죽은 친구 강지수를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캐나다 국적이긴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순수 한국인으로써 제이슨은 친구를 추적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과, 강지수를 자신들의 직원이라 말하며 그의 죽음 직전에 가장 가깝게 알고 지내던 제이슨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 떨어짐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남한 정부와 함께 대북공작의 주축이 되어 강지수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세력에 깊숙히 침투하여 그의 죽음과 숨겨진 진실들을 추적한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스릴러물의 공식을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의 탐구,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분석하는 화자의 독백과 사소한 것도 사소하지 않게 다가오는 긴장감의 연속. 속임과 속임수의 향연이 한 곡의 샹송처럼 달콤하게 휘감겨 들어온다. 그 어느것도 위화감 없이 하나 하나 맞아 떨어져간다. 북한의 인물들은 우리가 북한에 가지고 있는 괴뢰군의 느낌처럼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는 한민족' 이라며 무작정 친밀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들은 엄연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 다소 많은 차이를 가진 사상교육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 사고방식도 생각 외로 큰 차이를 두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도박과 술,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이슨과 그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들은 소설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고 또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고 오묘한 긴장감 속에서 독자를 흡입하는 장치로써 발휘되고 있었다.


  북한과 남한의 대립, 공작과 공작으로 자칫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던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나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던건 국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고독한 인물 '제이슨' 의 시선으로 이야기, 사건들을 철저히 포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겐 남북간의 긴장관계 따위는 큰 의미가 없으며 현 국적인 캐나다에 대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남한, 북한, 미국, 마카오는 그저 소설의 배경이며 대립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아이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민감한 소재를 의도에 따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건 소설이 다소 무거운 소재를 사용함에도 이를 '소재' 의 선에서 완벽히 제한할 수 있는 절제된 문장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신경진, 오랜만에 찾아낸 훌륭한 소설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테이블 위의 고양이 를 읽고 나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해 즐거웠다 라는 감상과 함께 신경진 이라는 좋은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라는 희열이 동시에 다가온다. 아는 작가, 혹은 선호하는 장르에 따라 책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이따금씩 전혀 내 취향에 연관성이 없는 책들을 충동적으로 접하는 것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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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서평2009/10/28 09:07
해변의 카프카 (상)해변의 카프카 (상)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해변의 카프카(상) 상세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펴냄
<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만에 내놓은 하루키의 장편소설. 어른과 아이의 기점에 선 15세 소년의 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하루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문체를 통해 소년 카프카가 넘나드는 삶과 죽음, 어른과 아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드러낸다. 소년의 경계를 넘어선 환상의 세계로의 여정을 한 층 성숙된 내면묘사와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로 독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드러낸다. 소년의 경계를 넘어선 환상의 세계로의 여정을 한 층 성숙된 내면묘사와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로 독

해변의 카프카(하) 상세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펴냄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만에 내놓은 하루키의 장편소설. 어른과 아이의 기점에 선 15세 소년의 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하루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문체를 통해 소년 카프카가 넘나드는 삶과 죽음, 어른과 아이, 현실


  군 생활 하면서 인터넷 구매와 보안성검토필이라는 악순환을 거쳐 어렵사리 읽은 책입니다.
  나름대로 많은 생각과 고찰을 하게 만든 책이기 때문에, 감상문도 상당한 길이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more / less 기능으로 접어버렸습니다(?).

감상문 펼치기


  여기까지가 군 생활 하면서 노트에 끄적인 내용들입니다.
  마지막 부분에도 써 놓았지만, 전 한 번을 읽고서는 이 '해변의 카프카' 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허락할 때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들과는 무관하게, '해변의 카프카' 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명작 소설이자 희대의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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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10/28 08:44
도가니도가니 - 10점
공지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들판에 피어난 가녀린 꽃들. 비단결같은 잎사귀도, 향기로운 냄새도 없이 그저 이름조차 갖지 못해 길거리 한 켠에 자리잡은 순천연색 아우성. 그저 존재함으로 짓밟히길 기다려야만 하는 비참한 아름다움을 그들은 몰래 간직하고 있나보다.
  도가니는 '그릇' 이라는 의미에 더해 하나의 고립된 공간, 혹은 뚜렷이 구별되는 세계 등을 의미하는 메타포로써 애용되는 단어이다. 열광의 도가니 하면 그 집단은 열광적인 한 세계로써 남들과는 다른 존재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한 도가니라 함은 '무진시' 라는 가상의 지역을 일컫는 외면적 의의와 '자애학원' 이라는 청각장애인학교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 잔인함, 죄악의 풍경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쓰여진 배경과 일맥상통하여, <도가니> 의 시나리오는 비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현실 / 비현실적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강인호의 시점을 철저히 따르는 이야기의 진행은 좁디 좁은 도가니 속에서 피어나 이유없이 짓밟히는 들꽃들을 바라보는 연약한 방관자의 시선을 좇으며 한 편으로는 잔악무도한 인간들에 분노하는 뜨거운 감정을, 다른 한 편에서는 분노와 정의감이 스스로를 녹여내고 찢어발기는 나약함에 사로잡힌 죄의식의 심리를 그려낸다. 이중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감성은 실은 우리 모두를 끌어안을 만큼 익숙하기에 쉽게 감정 몰입이 가능하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 그 중 몇몇은 지진아이기도 한 자애학원 학생들이 이사장과 이하 수족들에게 겁탈당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르는 동안, 이러한 사실들을 맞이한 '어른들' 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이다. 실제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이기에 작가 공지영은 이렇듯 정의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파도에 한 없이 나약해져버린 자들에게 철퇴를 가할 심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그저 잠깐 스쳐갈 눈보라 즈음으로 흘려버리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킨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방조의 시선을 겸연쩍게 바라보고 있음을 실감하며, 이야기 속 '나쁜 어른' 들에게 핏대 세워 울부짖는 서유진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의는 승리할 것으로 보였으며 배신자로 낙인찍힐 강인호에게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상대적인 두 감정의 충돌은 오묘한 쾌감으로써 독자들을 사로잡는 효과를 가졌다. 비극적 시나리오가 사필귀정, 인과응보로 변해가는 과정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꽉 막힌 가슴을 움켜쥘 독자들을 어느정도 달래주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이 녹녹치 않듯 가상의 도가니 '무진시' 의 이야기도 결코 쉽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믿고 지키는 법의 심판은 자애학원의 가녀린 꽃잎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집단지성이라는 사회적 여론들도 그렇지 못했다. 그저, 스스로를 던져 사악한 손길과 무심한 발길질을 막아낸 몇몇의 희생으로 잿빛 도시의 들꽃들은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다. 비록 찢기고 더럽혀진 꽃이라 힐난을 받는다 해도, 내리는 빗방울과 매일을 시작하는 아침이슬이 그들을 보드랍게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아니지만, 강인호도, 서유진도 자애학원 학생들도 독자들의 헐어버린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리칠 것이다. '나약함이 죄는 아니나 그렇게 스러짐은 곧 잊혀질 것이다.' 우린 결국 나약함을 앞세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설 것이고, 그렇게 스러질 것이며, 잊혀지겠다. 난 이 쓰라린 메시지를 잊지 않을 생각이다. 진정 연약한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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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9/13 13:21
당나귀의 지혜 - 10점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멜론


  읽는데 꽤 시간이 걸린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는 '당나귀의 지혜' 란 이렇듯 급하지 않고 느긋한 속도감이랄까, 혹은 여유로움이 포함된 것이리라. 물론 난 이에 내가 동조하고 있는 것인지 알 턱이 없다. 단지 바빴던걸지도...

  이 책은 짧은 기간 동안의 자서전 혹은 자조적인 에세이 정도로 볼 수 있다. 은은한 향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하지만 빠르지 않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문장들은 프랑스 외곽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어우러져 읽는 이를 나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격하지 않음에도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거나, 담담한 어조로 현대 문명의 근간을 그 뿌리부터 비난해버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물론 이 책은 이렇듯 무언가를 주장한다거나 옳다 라고 말하려는 의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다. 단지, 어떠한 감성을 강요하기 보다는 작가 스스로가 느꼈던 감성적 변화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런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음이 재미있다.

  당나귀의 특질, 그러니까 작가 앤디 메리필드와 함께 여행했던 당나귀 그리부예의 특질들은 곧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들에 완벽히 상충한다. 좀 더 빨리, 강하게, 정확하게 를 요구하는 우리들에게 당나귀의 행동들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것이다. 당나귀들의 인내심과 침착함, 정감어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눈빛. 겁이 많지만 의지가 강하고, 한 겨울의 눈보라도 개의치 않는 우직함이나 금새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 포근함, 따스함이 있다. 느릿느릿한 걸음이지만 멈추지 않고, 앞에 장애물이 있다면 억지로 매를 때려도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아파도 아픈 척 하지 않는 미련함이나 완전히 안전하지 않은 길엔 발을 뻗지 않는 소심함은 비난할 수 없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물 흐르듯 유유한 문장들이 왠지 모르게 강렬하게 내 가슴을 씻어내리고 후벼대는 것은, 내 스스로가 원했던, 그리고 갈구했던 삶의 모습을 책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 살고자 했던 삶이란 이토록 책으로 등장하여 현실의 나를 괴롭힌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나 또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과 가치관에 물들어 조금은 억지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당나귀의 지혜' 를 읽는 것으로서 이러한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견뎌낼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앞으로 당나귀같은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처럼 실체적인 문장들을 가슴에 담음으로서 부분적으로나마 변화를 주고 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아는 그 무엇보다도 진리에 가까운 지혜를 배웠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내게 이렇듯 혜안을 나누어준 당나귀를 실제로 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하나의 소망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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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8/19 22:41

왼쪽이 알라딘에서 받은거
오른쪽은 직접 산거.(역시 알라딘에서)

왼쪽에 '당나귀의 지혜' 라는 책이 추가되어야 하고(갖고다니면서 읽고 있다)
오른쪽엔 조만간 도착할 알랭 드 보통의 신작 '일의 기쁨과 슬픔' 이 추가되어야 한다.

알라딘에서 준 책이 이거 말고 안 읽은게 한 권이 더 있는데
읽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 정 읽을거 없으면 봐야지 싶은 정도랄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알라딘에서 서평단 자격으로 받은 책을 먼저 주루룩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서평을 스피드하게 써야지.
그냥 주는 것도 고마운데 말이야 -ㅂ- 언능 읽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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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8/17 22:47
이전에 쓴 이미지 우려먹기!

  일전에 짤막하게 쓴 글에서 말했듯, 군대에서 처음 읽은 뒤로 잊지 못해 여태 갈구하다 겨우 읽은 책이다. 로맨틱한 제목 앞에 펼쳐지는 가슴 시린 이야기들, 부드럽지만 왠지 쓰라린 강가의 솔바람에 취한 옛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이 책을 찾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지 않은 책임에도, 빌려주신 분을 고생시켜가면서 - _-a

  하얀 로냐프 강은 1부, 2부로 나뉘어있다. 1부와 2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며 꽤 오랜 시간을 텀으로 두고 쓰여졌기 때문에 같은 세계관과 배경을 가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장르가 다른 것이 아닐까 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작정은 아니니 스크롤 매만지는 그 손가락을 거두시라!

  난 이것이 두 갈래로 갈라진 이야기 만큼 두 개의 커다란 줄기가 세워져있는 것이라 여긴다. 1부와 2부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기둥은 각각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 '희생'. 이렇게 간단하게 나눠버리면 너무 비약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나, 난 이 두 줄기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명제라 생각했고 마지막 장을 넘기며 책을 덮은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1부는 사랑과 희생을, 2부는 희생과 명예를 다룬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자가 대 명제, 후자가 이를 받쳐주는 감정의 기폭제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어느정도 맞아떨어지지 않나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환상문학이라 일컬어진다는 표지의 멘트가 난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판타지라 하면 일반적으로 가지는 편협적 시각은 장르문학이라는 기치 아래 판타지 문학의 가치 폄하에 앞장서왔다. 맨날 유럽 중세시대, 북유럽 신화 등에 기인한 마법과 드래곤의 조화 뿐인 양산형 소설이다 라는게 지금까지의 견해들 중 주를 이루는 것이었고 이에 무협소설의 양산화까지 겹쳐 '애들이나 보는 만화책 수준의' 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문학의 길을 꿈꾸고 있고 또 환상 문학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렇듯 하얀 로냐프 강의 예처럼 환상 문학이 가지고 있는 높고 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도 기쁘다. 내가 잡타지라 불리우는 저질 환상소설들에 가슴이 애려오는 아픔을 느끼며 '진정 내가 걷고자 하는게 이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을 때 나를 붙잡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명예, 기사도, 전쟁, 우정, 사랑... 어찌 보면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들이나 이를 버무리는 것은 분명 작가의 능력이며 의지인 것이다. 같은 칼자루를 쥐어도 끝을 알 수 없는 차이를 가지는 것이 인간이라 했다. 환상 문학이 그 예술적 가치와 흥행성을 동시에 취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소설 하얀 로냐프 강은 내게 맑은 강물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비치는 푸르른 창공까지 내 눈 앞에 가져다 주었다. 한 동안은 이 감동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찾아 이리 저리 찾아 헤매일 것이다.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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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8/03 21:03


  처음 이 책을 본건 군대에서의 일이다. 내가 막 병장을 달고 당직부사관을 서던 중 PC를 이잡듯이 뒤져 찾아낸 TXT파일 꾸러미들. 야설이 반이고 그 나머지 반도 게임소설들이라 금새 눈을 돌리던 중, 파일목록 최 하단에 있던 하얀 로냐프 강.txt 는 그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제목을 무기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정신이 들어보니 해가 떠 있더라... 라는 후문.

  내가 밤새도록 읽었던 건 고작 1권 분량이었다. 2권도 찾아보려 했으나 아무리 디스크 검색을 돌리고 폴더를 탈탈 털어도 더 나오는건 없었다. 누군가가 오묘하게 숨겨둔 포켓몬스터같은 게임이나 있지, 소설을 모아놓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거기서 멈춰야 했지만, '고결한 희생' 이라는 키워드는 차후 읽었던 소설들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해메고 갈망했던 감성이 되었다.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오늘날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하얀 로냐프 강을 떠올린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제리스님의 블로그 타이틀로 떠올릴 수도 있었고 희생이라는 비현실적 감성이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이름이었다. 결국 민폐를 끼쳐가며 책을 빌렸고, 지금 내가 앉은 곳은 로냐프 강변 한 구석이 되었다.

  현재 2권 중반 정도까지 읽었다. 이바이크의 붉은 희생, 퀴트린의 하얀 희생.
  희생의 고결함이 이토록 빛났던, 청승맞은 20대 남정네의 눈시울을 붉혔던 이야기가 실로 존재했던가!
 
  퀴트린이 아아젠을 위해 하야테를 꽂고 무릎을 꿇던 그 때, 이를 훔쳐보던 난 지하철에서 찌질하게 눈을 비벼대며 창가를 보았다. 파스크란은 또 왤케 멋진거냐!! 아... 벌게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고 발끝에 시선을 놓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이렇게 창피할 수가 없다. 내가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참 힘들다 여러모로 - _-

  하얀 로냐프 강 같던 소녀, 하얀 로냐프 강 같던 당신. 하얀 로냐프 강을 거닐고 싶다. 그 냄새를 맡고 싶고, 적당히 찬 듯 시원한 물결에 발을 담가보고 싶다. 멀찍이서 풍경을 바라보고 싶고, 가까이서 두 눈을 빠트린 채 오후 한 때를 보내도 좋겠다.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지금도 난 여전히 그 곳에 있는 것만 같다.

  한 가지 두려운건, 다 읽고 나서도 이 감정을 - 그 땐 후유증이 되어 있겠지만 - 추스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아직 8권이나 남아있기에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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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8/03 11:02
이제 앞으로 서평엔 [서평] 말머리를 달아야지... - _-a
도가니 - 10점
공지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들판에 피어난 가녀린 꽃들. 비단결같은 잎사귀도, 향기로운 냄새도 없이 그저 이름조차 갖지 못해 길거리 한 켠에 자리잡은 순천연색 아우성. 그저 존재함으로 짓밟히길 기다려야만 하는 비참한 아름다움을 그들은 몰래 간직하고 있나보다.
  도가니는 '그릇' 이라는 의미에 더해 하나의 고립된 공간, 혹은 뚜렷이 구별되는 세계 등을 의미하는 메타포로써 애용되는 단어이다. 열광의 도가니 하면 그 집단은 열광적인 한 세계로써 남들과는 다른 존재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한 도가니라 함은 '무진시' 라는 가상의 지역을 일컫는 외면적 의의와 '자애학원' 이라는 청각장애인학교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 잔인함, 죄악의 풍경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쓰여진 배경과 일맥상통하여, <도가니> 의 시나리오는 비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현실 / 비현실적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강인호의 시점을 철저히 따르는 이야기의 진행은 좁디 좁은 도가니 속에서 피어나 이유없이 짓밟히는 들꽃들을 바라보는 연약한 방관자의 시선을 좇으며 한 편으로는 잔악무도한 인간들에 분노하는 뜨거운 감정을, 다른 한 편에서는 분노와 정의감이 스스로를 녹여내고 찢어발기는 나약함에 사로잡힌 죄의식의 심리를 그려낸다. 이중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감성은 실은 우리 모두를 끌어안을 만큼 익숙하기에 쉽게 감정 몰입이 가능하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 그 중 몇몇은 지진아이기도 한 자애학원 학생들이 이사장과 이하 수족들에게 겁탈당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르는 동안, 이러한 사실들을 맞이한 '어른들' 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이다. 실제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이기에 작가 공지영은 이렇듯 정의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파도에 한 없이 나약해져버린 자들에게 철퇴를 가할 심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그저 잠깐 스쳐갈 눈보라 즈음으로 흘려버리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킨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방조의 시선을 겸연쩍게 바라보고 있음을 실감하며, 이야기 속 '나쁜 어른' 들에게 핏대 세워 울부짖는 서유진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의는 승리할 것으로 보였으며 배신자로 낙인찍힐 강인호에게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상대적인 두 감정의 충돌은 오묘한 쾌감으로써 독자들을 사로잡는 효과를 가졌다. 비극적 시나리오가 사필귀정, 인과응보로 변해가는 과정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꽉 막힌 가슴을 움켜쥘 독자들을 어느정도 달래주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이 녹녹치 않듯 가상의 도가니 '무진시' 의 이야기도 결코 쉽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믿고 지키는 법의 심판은 자애학원의 가녀린 꽃잎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집단지성이라는 사회적 여론들도 그렇지 못했다. 그저, 스스로를 던져 사악한 손길과 무심한 발길질을 막아낸 몇몇의 희생으로 잿빛 도시의 들꽃들은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다. 비록 찢기고 더럽혀진 꽃이라 힐난을 받는다 해도, 내리는 빗방울과 매일을 시작하는 아침이슬이 그들을 보드랍게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아니지만, 강인호도, 서유진도 자애학원 학생들도 독자들의 헐어버린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리칠 것이다. '나약함이 죄는 아니나 그렇게 스러짐은 곧 잊혀질 것이다.' 우린 결국 나약함을 앞세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설 것이고, 그렇게 스러질 것이며, 잊혀지겠다. 난 이 쓰라린 메시지를 잊지 않을 생각이다. 진정 연약한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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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울베어
문화생활/서평2009/07/10 22:04
위험한 생각들 - 10점
존 브록만 엮음, 이영기 옮김/갤리온
   위험하다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위험한 생각들 이라는 제목에 빠져있는 목적어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을 포함한 인류, 우주를 아우르는 지식의 향연이 과연 어떤 위험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질문으로 시작된 흥분어린 눈길은 단순명료한 타이포그라피의 겉표지를 맴돌다가 말끔한 속 내용을 훑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학술서적을 펼침으로써 매번 겪는, 어색한 첫 인사이다. 지금부터 당신들의 위험한 생각들을 대담하게 습득해주겠다, 라는 마음이 떨리는 눈동자를 다잡게 해줬다. 언제나 어려운 이야기는 서두부터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기는건 스스로의 생각들을 위험하다라고 일컫는 엉뚱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 생각들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작금의 도덕적 관념이나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의 편견과 고정관념 등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그렇게 믿었던 주장이나 이론들이 무참히 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실로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 혹은 튼튼한 근거가 뒷받침되어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할지라도 - 암담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책에 실린 내용인데, 유전자 조작으로 내 아이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켜 출산하는 것과, 아이가 어릴 때 운동을 시키고 좋은 밥을 먹여 단련시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다름 아닌 윤리적 관점이다. 잉태와 출산, 성장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라는 시각에 더불어 출산 후 일련의 훈련과정은 성장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것이 아닌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영양분 조절과 운동효과의 극대화 등은 분명 성장의 일부분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결국 양 쪽 모두 과학의 발전과 문명의 발달로써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러한 윤리관과의 충돌은 다소 불편할지언정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이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유전자 조작이 만연하게 될 것이고 곧 우리의 후손들은 마치 조각된 석상과도 같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의, 똑같이 생긴 인형들이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우리는 약 2만개의 나선 구조로 이루어진 DNA의 설계도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 완벽하진 않다. - 그리고 살인, 절도 등의 범죄들은 뇌의 구조, 신경증 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고장난 기계를 고치듯 범죄의 발생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어째서 '처벌' 을 하는가? 재발방지와 도덕적 규범의 확립이라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법률적인 처벌이 결국은 범죄자에 대한 피해자의, 그리고 언론매체를 통해 소식을 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분노를 해결하는 '복수심의 발현' 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이유에 합리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들이미는 현대의 가치관에서 이토록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아이러니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고장난 컴퓨터를 독방에 가두거나 창문으로 던져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가끔 그런 일도 있지만 이는 조롱거리일 뿐이다. - 인간이 스스로의 내부를 탐구하는데 나날히 그 열정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린 거의 모든 범죄행위가 병리적 현상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고칠 것인가, 벌을 줄 것인가? 윤리적 관점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이보다 위험하긴 힘들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통념을 깨고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생각들은 당연하다 여기곤 했던 것들을 무참히 파괴하면서 일종의 놀라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는 곧 점차 넓어지는 식견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당대 석학들의 수준 높은 통찰들을 통해 두 눈에 비치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방법을 얻게 되면서, 독자들은 불편한 진실 속에 숨어있는 오묘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알아가는 재미, 생각이 트이는 재미란 이런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당히 깊은 수준의 이론까지 도달해 있는 내용들이지만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하는 문제점은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과학엔 영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이 역설적인 생각의 파편들에 매료되었으니, 도움이 되고 지식을 키우는 책임과 동시에 ≪위험한 생각들≫은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고리타분하게 응고되어있는 사고를 유연히 하고 싶다면, 이 좌충우돌을 거듭하는 위험한 생각들을 마음껏 습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분명,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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