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장문의 뻘글인가.
소감이라기엔 뻘글요소가 좀 심하지만
왠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왜 이런 개소리가 이렇듯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키 큰 남자가 우월하다 라는건 정설이었고 그래서 키 작은 남자들[나도 포함]은 언제나 씻을 수 없는 패배주의에 짓물려 썩은 구린내가 진동하도록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이건 일반화의 오류를 심각하게 범하고 있는 '싸잡아 깎아내리는' 전형적인 문장이긴 하지만, 진실에서 크게 엇나간다고 보진 않는다.
혹자가 말하길 이번 '루저 발언' 이 크게 이슈가 된건 그것이 자극적이어서 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여성을 일반화하기에 충분한 무대인 '미녀들의 수다' 가 그 배경이었다는 것에 있기도 하단다. 더군다나 어휘가 매우 자극적임과 동시에 도발적이었고 - 거의 시비거는 수준 - 그게 하필이면 스스로도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는 키 얘기였기 때문에 이 도발은 국지적인 콩알탄 수준이 아니라 초가집 잔뜩 늘어선 마을에 횃불 던진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난 생각했다. 키워드는 무얼까. 열등감? 사실 이렇게 파장이 큰건 그냥 열받는다기 보다는 간결한 '루저' 라는 단어가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유머러스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갖고놀기 좋은 단어이므로 이런저런 패러디가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도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 미니홈피 테러 등도 유희에 가까운 행동들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사실 열등감에 의한 보복행위로만 이 현상을 설명하는건 협소한 시각을 자랑하는 꼴이 될 것이다.
열등감이 키워드가 되기에 부족하다면 무엇을 들이대는게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나마 중추적인 표현이 가능할까? 나는 5초정도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불안.
네티즌들이 '키작은 니들은 루저' 라는 한 마디에 이토록 열광(?)한 이유들과 또 그 모양새를 설명하는데 저 단어보다 적절한걸 찾긴 힘들어보였다. 내가 불안 이라는 단어를 뽑아낸건 일전에 쓴 서평 에 등장하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이라는 책에서이다. 즉, 그 책의 내용에 의거해 좀 더 풀어 쓰자면 이렇게 된다.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에 대한 불안.
존중받지 못할거라는 불안감.
내 존재가치가 남들보다 낮다, 저급하다 라는 명제가 진실일지 모른다는 불안.
이도경의 발언은 미친 개소리다. 하지만 그 간결한 짖음이 우리 내면의 열등감, 마른 건초더미를 꾹꾹 눌러놓은 듯 잠자고 있는 이 감정에 옅은 불씨 하나를 던진 것이다. 이는 이도경의 루저 발언이나 내면의 패배의식이 진실이건 아니던 크게 상관이 없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것이다. 키가 작다는 것, 좀 더 포괄적으로는 외모가 눈에 띄게 잘생기거나 이쁜 것이 아니므로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폄하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타인의 입에 의해 현실성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왠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왜 이런 개소리가 이렇듯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키 큰 남자가 우월하다 라는건 정설이었고 그래서 키 작은 남자들[나도 포함]은 언제나 씻을 수 없는 패배주의에 짓물려 썩은 구린내가 진동하도록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이건 일반화의 오류를 심각하게 범하고 있는 '싸잡아 깎아내리는' 전형적인 문장이긴 하지만, 진실에서 크게 엇나간다고 보진 않는다.
혹자가 말하길 이번 '루저 발언' 이 크게 이슈가 된건 그것이 자극적이어서 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여성을 일반화하기에 충분한 무대인 '미녀들의 수다' 가 그 배경이었다는 것에 있기도 하단다. 더군다나 어휘가 매우 자극적임과 동시에 도발적이었고 - 거의 시비거는 수준 - 그게 하필이면 스스로도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는 키 얘기였기 때문에 이 도발은 국지적인 콩알탄 수준이 아니라 초가집 잔뜩 늘어선 마을에 횃불 던진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난 생각했다. 키워드는 무얼까. 열등감? 사실 이렇게 파장이 큰건 그냥 열받는다기 보다는 간결한 '루저' 라는 단어가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유머러스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갖고놀기 좋은 단어이므로 이런저런 패러디가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도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 미니홈피 테러 등도 유희에 가까운 행동들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사실 열등감에 의한 보복행위로만 이 현상을 설명하는건 협소한 시각을 자랑하는 꼴이 될 것이다.
열등감이 키워드가 되기에 부족하다면 무엇을 들이대는게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나마 중추적인 표현이 가능할까? 나는 5초정도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불안.
네티즌들이 '키작은 니들은 루저' 라는 한 마디에 이토록 열광(?)한 이유들과 또 그 모양새를 설명하는데 저 단어보다 적절한걸 찾긴 힘들어보였다. 내가 불안 이라는 단어를 뽑아낸건 일전에 쓴 서평 에 등장하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이라는 책에서이다. 즉, 그 책의 내용에 의거해 좀 더 풀어 쓰자면 이렇게 된다.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에 대한 불안.
존중받지 못할거라는 불안감.
내 존재가치가 남들보다 낮다, 저급하다 라는 명제가 진실일지 모른다는 불안.
이도경의 발언은 미친 개소리다. 하지만 그 간결한 짖음이 우리 내면의 열등감, 마른 건초더미를 꾹꾹 눌러놓은 듯 잠자고 있는 이 감정에 옅은 불씨 하나를 던진 것이다. 이는 이도경의 루저 발언이나 내면의 패배의식이 진실이건 아니던 크게 상관이 없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것이다. 키가 작다는 것, 좀 더 포괄적으로는 외모가 눈에 띄게 잘생기거나 이쁜 것이 아니므로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폄하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타인의 입에 의해 현실성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도경의 발언이 개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희망을 현실화 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이에 동조하는 불특정 다수가 결합하면서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부여하여 생명력을 얻는 것. 불안감이 이를 물리치기 위한 반동작용, 방어기재로 돌변하여 맹목적인 비난과 공격적인 행위들로 치환되는 것. 그것이 이번 일에 대한 정의로 어느정도 타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빌어먹을 속물주의가 우리를 얼짱의 노예로 바꿔버린 이 시대의 잿빛 그림자.
한 편에서는 '외모가 다가 아니야' 라며 자위하지만
저런 시덥잖은 도발에 전지적 분노를 일으키는 허약한 자아.
내가 지금 그 '불특정 다수' 를 비난하는 것 처럼 보이진 않겠지?
난 지금 발끈했던 내 자신을 비웃고 있는거다. 自笑.
결국 이번 일을 목격함으로써 내가 얻은건 난 정말 허약하구나 라는 느낌 뿐이려나.
빌어먹을 속물주의가 우리를 얼짱의 노예로 바꿔버린 이 시대의 잿빛 그림자.
한 편에서는 '외모가 다가 아니야' 라며 자위하지만
저런 시덥잖은 도발에 전지적 분노를 일으키는 허약한 자아.
내가 지금 그 '불특정 다수' 를 비난하는 것 처럼 보이진 않겠지?
난 지금 발끈했던 내 자신을 비웃고 있는거다. 自笑.
결국 이번 일을 목격함으로써 내가 얻은건 난 정말 허약하구나 라는 느낌 뿐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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